"왜 치매 환자는 과거에 머무를까"... KAIST, 최신 기억 꺼내는 ‘뇌 속 스위치’ 첫 규명

과거·현재 기억 전환하는 신경회로 세계 최초 발견
기억력 감퇴·인지 유연성 저하 치료 패러다임 바꿀 ‘기억 선택 기술’ 열렸다

염현철 기자 | 기사입력 2026/05/17 [18:12]

"왜 치매 환자는 과거에 머무를까"... KAIST, 최신 기억 꺼내는 ‘뇌 속 스위치’ 첫 규명

과거·현재 기억 전환하는 신경회로 세계 최초 발견
기억력 감퇴·인지 유연성 저하 치료 패러다임 바꿀 ‘기억 선택 기술’ 열렸다

염현철 기자 | 입력 : 2026/05/17 [18:12]

▲ 본 연구팀이 개발한 기억 업데이트 행동 실험 패러다임. 학습 챔버에서 전기 충격을 받은 생쥐는 학습 챔버를 회피하는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이후 학습 챔버에서 물 보상을 얻으면, 생쥐는 회피 행동에서 그 챔버를 선호하는 행동으로 행동을 전환함.(그림 및 설명=KAIST)  © 특허뉴스

 

“왜 어떤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 기억에 머무를까?”

한국 과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한 뇌과학적 해답을 제시했다. KAIST 연구진이 우리 뇌가 과거 기억과 최신 기억 사이에서 어떤 정보를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핵심 ‘신경 스위치’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면서, 기억력 감퇴와 인지 유연성 저하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번 발견은 단순히 기억 저장 메커니즘을 밝힌 수준을 넘어, 뇌가 경쟁하는 기억들 사이에서 현재 상황에 맞는 최신 정보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조절 시스템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치매, 알츠하이머병, 인지저하 환자들이 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 패턴에 머무르는지에 대한 새로운 치료 접근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KAIST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은 기억과 학습 조절의 핵심 영역인 내측중격(Medial Septum, MS)과 해마로 기억 정보를 전달하는 내측내후각피질(Medial Entorhinal Cortex, MEC) 사이 특정 신경회로가 기억 전환의 핵심 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쉽게 말해, 이 회로가 활성화되면 뇌는 최신 기억을 우선적으로 불러오고, 회로가 차단되면 뇌는 과거 기억 체계로 되돌아간다. 즉, 뇌 안에는 단순 저장장치가 아니라 ‘어떤 기억을 지금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 장치가 존재했던 것이다.

 

연구의 핵심은 행동 변화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연구팀이 빛을 이용해 해당 회로를 인위적으로 차단하자 실험동물은 새로운 정보를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 방식대로 행동했다. 이는 기억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최신 정보를 꺼내는 기능이 막히면서 과거 기억이 행동을 지배했다는 의미다. 동시에 해마의 신경활동 역시 과거 기억 상태로 회귀했다. 다시 말해 기억력 문제는 단순 저장 실패가 아니라 ‘기억 선택 실패’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다.

 

이번 연구는 기억의 정의 자체를 확장한다. 기존 뇌과학은 기억을 저장과 인출 중심으로 이해해 왔지만, 이번 결과는 기억의 핵심이 저장된 정보를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보다 “필요한 시점에 어떤 기억을 선택하느냐”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의사결정, 문제 해결, 추론, 미래 예측 같은 고차원 인지기능의 본질이 기억량이 아니라 기억 전환 능력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뇌의 리듬 상태 분석 결과도 주목된다. 연구팀은 뇌가 학습·집중 상태인 ‘온라인 상태(세타파)’와 휴식 상태인 ‘오프라인 상태(델타파)’를 반복한다는 점에 착안해, 이 상태 변화와 기억 인출 성능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온라인 상태가 길수록 최신 기억 인출이 향상됐고, 반대로 상태 전환이 잦을수록 기억 수행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는 기억력 감퇴가 단순 노화가 아니라 특정 신경 리듬 조절 이상과 연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의학적 파급력도 크다. 치매나 알츠하이머 환자의 상당수는 과거 기억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정보 업데이트 능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 해마 손상이 아니라, 최신 기억 선택 회로 이상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향후 해당 회로 또는 뇌 리듬을 조절하는 방식의 치료기술이 개발된다면, 기억력 자체를 복원하는 것을 넘어 ‘현재에 맞는 기억 활용 능력’ 회복이라는 새로운 치료 방향이 가능해질 수 있다.

 

한진희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 뇌가 수많은 경험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활용하는 원리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며 “기존에는 기억 인출을 단순히 저장된 흔적을 재생하는 과정으로 이해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뇌가 경쟁하는 기억들 사이에서 최신 정보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조절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김무준 박사, 서보인 박사과정, 소선회 박사과정, 최정욱 박사과정, 황재민 박사과정, 박주희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참여했으며, 신경과학분야 최상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4월 29일자 게재했다. 

 

결국 이번 연구는 인간 기억의 본질이 “무엇을 저장했는가”에서 “언제 무엇을 선택하는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뇌는 과거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현재를 위해 기억을 재편집하는 능동적 선택 시스템일 수 있다. 그리고 KAIST는 그 스위치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치매 치료, 인지 강화, AI형 뇌모사 기술까지… 기억과 선택의 미래가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논문명은 A septo-entorhinal GABAergic pathway that enables switching between episodic memori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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