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이제 AI가 ‘가상 미래’로 먼저 본다"... KAIST, 기후·경제·에너지 통합 예측 시대 열었다기후변화 넘어 산업·정책까지 동시에 읽는 AI 기반 ‘미래 시뮬레이션 엔진’ 공개... 탄소중립 전략의 판 바꿀 ‘AI 정책 실험실’ 부상
기후위기는 더 이상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기온 상승과 탄소배출을 넘어, 산업 구조·에너지 전환·경제 성장·국가 정책까지 동시에 흔드는 복합 위기다. 문제는 이러한 거대한 변화가 서로 얽혀 있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데 있다. 이런 가운데 KAIST와 국제 공동연구진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기후 변화와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차세대 기후 연구 프레임워크를 제시하며, ‘AI 기반 기후정책 시대’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다.
KAIST는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전해원 교수, 카르틱 무카빌리(Karthik Mukkavilli) 겸직교수, 전산학부 오혜연 교수 연구팀이 북경대학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밀라노 폴리테크닉대, 메릴랜드대,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 등과의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AI 기반 기후 연구 파운데이션 모델(AI-Based Climate Research Foundation Model)’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세계적 권위 학술지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Nature Climate Change)에 게재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성과의 핵심은 기후 예측의 ‘분절 구조’를 깨뜨렸다는 점이다. 기존 기후 연구는 물리적 기후 변화, 에너지 시스템, 경제 정책 분석이 각각 별개로 수행돼 왔다. 예를 들어 기온 상승은 예측할 수 있어도, 특정 탄소세 정책이 산업 성장과 에너지 비용, 온실가스 감축에 동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종합적으로 분석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계산 자원이 필요했다.
KAIST 연구팀은 이 한계를 AI로 돌파했다. 지구 관측 데이터, 경제 시나리오, 정책 변수, 에너지 구조 등 서로 다른 성격의 대규모 데이터를 하나의 공통된 분석 공간(shared latent space)에서 이해하도록 설계해, 기후·경제·정책의 상호작용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구조를 구현했다. 쉽게 말해, 기후 변화만 보는 모델이 아니라 ‘기후가 산업과 경제를 어떻게 흔들고, 정책이 다시 이를 어떻게 바꿀지’를 함께 읽는 AI 기반 통합 플랫폼이다.
특히 이번 모델에는 ‘혼합 전문가(Mixture of Experts, MoE)’ 구조가 적용됐다. 이는 각기 다른 AI 모듈이 물리학자, 경제학자, 에너지 전문가처럼 역할을 분담해 협력하는 방식이다. 물리 법칙 기반 계산과 데이터 학습 기반 AI를 결합함으로써, 기존 모델보다 훨씬 빠르면서도 신뢰성 있는 예측이 가능해졌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정책 실험에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온실가스 예측 고속 AI 에뮬레이터(Emulator)’도 공개했다. 이는 기존 통합평가모델(IAM)이 수개월 혹은 수주 걸리던 정책 시나리오 분석을 AI가 단시간 내 수천 건 수준으로 수행하도록 만든 기술이다.
예를 들어 탄소세를 인상하거나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 변화는 물론 산업 성장률·에너지 가격·경제 구조 변화까지 빠르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사실상 ‘국가 정책용 가상 미래 실험실’을 구현한 셈이다.
이 기술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예측 속도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정책 결정 과정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 기존에는 제한된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장기 정책을 설계했다면, 앞으로는 수천 가지 정책 조합을 AI로 실시간에 가깝게 검토하며 최적의 전략을 찾는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확대, 산업 구조조정 등 국가 전략 수립 방식이 훨씬 정교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AI의 활용 방향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생성형 AI와 산업 자동화가 상업적 효율성에 집중되는 가운데, KAIST는 AI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인류 공공재 영역으로 확장했다. 전해원 교수와 오혜연 교수는 KAIST의 ‘AI4Good’ 연구 네트워크를 통해 AI를 사회문제 해결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이번 연구는 그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전해원 교수는 “이번 기후-AI 모델은 기후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핵심 가교가 될 것”이라며 “고속 AI 에뮬레이터는 실시간에 가까운 정책 분석을 가능하게 해 실질적 기후 대응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오혜연 교수 역시 “AI는 단순한 상업적 도구를 넘어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며 “이번 국제 공동연구는 AI가 사회적 난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공공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연구는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질문을 바꾸고 있다. ‘미래를 얼마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가’에서, ‘얼마나 많은 미래를 먼저 실험해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는가’로의 전환이다.
AI가 산업 생산성을 높이는 시대를 넘어, 국가의 생존 전략까지 설계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KAIST의 이번 성과는 한국 AI가 단순 기술 경쟁을 넘어, 기후와 정책을 연결하는 ‘미래 설계 기술’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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