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특허무효, 이제 더 어려워진다"... PTAB 문턱 상승에 K-기업 IP 방어전략 ‘비상’

USPTO ‘강한 특허’ 기조로 IPR 심리개시 제한 확대... 반도체·IT 기업, NPE 분쟁 대응전략 재설계 시급
한국지식재산연구원,‘美 특허무효심판 개편 동향과 우리 기업 대응방안’보고서 발간

이성용 기자 | 기사입력 2026/05/12 [17:36]

"美 특허무효, 이제 더 어려워진다"... PTAB 문턱 상승에 K-기업 IP 방어전략 ‘비상’

USPTO ‘강한 특허’ 기조로 IPR 심리개시 제한 확대... 반도체·IT 기업, NPE 분쟁 대응전략 재설계 시급
한국지식재산연구원,‘美 특허무효심판 개편 동향과 우리 기업 대응방안’보고서 발간

이성용 기자 | 입력 : 2026/05/12 [17:36]

▲ 출처=생성형 AI 이미지  © 특허뉴스

 

미국 특허분쟁의 핵심 방어 수단으로 활용돼 온 특허무효심판(IPR)의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특허상표청(USPTO)이 ‘태생부터 강한 특허’ 기조를 강화하며 특허심판원(PTAB)의 심리개시 기준을 엄격하게 운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에 진출했거나 미국 특허분쟁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우리 기업들은 기존의 무효심판 중심 대응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은 최근 '美 특허무효심판의 개편 동향과 시사점: IPR 심리 거절 확대에 따른 우리기업의 대응방안' 보고서를 발간하고, 미국 특허제도의 변화가 국내 기업에 미칠 파급효과와 대응 방향을 분석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명확하다. 미국의 IPR 제도가 더 이상 단순한 특허 무효 방어 절차에 머물지 않고, 산업 보호와 국가 안보 논리까지 결합된 전략적 제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IPR은 그동안 특허침해소송에 대응하는 기업들이 가장 많이 활용해 온 방어 수단 중 하나였다. 소송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고 비용 효율적으로 특허의 유효성을 다툴 수 있었기 때문에, 특히 특허관리전문회사(NPE)의 공격을 받는 기업들에게는 중요한 ‘방어막’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USPTO가 심리개시 여부에 대한 USPTO 청장의 재량을 강화하면서, 앞으로는 IPR 신청 자체가 받아들여질지 여부부터 불확실성이 커질 전망이다.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재량적 거절’의 확대다. USPTO는 IPR 청구가 형식적 요건을 갖추고 특허무효 가능성을 제시하더라도, 병행 소송 상황이나 절차 효율성, 공정성 등을 이유로 심리 개시를 거절할 수 있다. 특히 과거 논란이 컸던 ‘핀티브(Fintiv) 기준’이 다시 강화되는 흐름은 기업들에게 중요한 변수다. 핀티브 기준은 병행 중인 법원 소송 일정, 절차 진행 정도, 쟁점 중복 여부, 당사자 동일성, 자원 낭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PTAB이 심리개시를 거절할 수 있도록 한 기준이다.

 

문제는 이 기준이 적용될 경우, 기업이 아무리 탄탄한 무효 논거를 준비하더라도 IPR 절차에 진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연방법원 소송이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에서 침해소송이 제기된 경우, PTAB은 “이미 법원 절차가 충분히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IPR 개시를 거절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NPE가 소송 지역과 절차를 전략적으로 선택해 기업의 IPR 방어 가능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더 큰 변화는 미국 특허정책이 산업정책과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USPTO가 자발적 검색공개선언(SDD)과 미국 내 제조·투자 요소 등을 고려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한다. 이는 특허심판 절차에서 단순히 기술적 무효성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미국 산업과 공급망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도 판단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미국 내 생산 기반이나 투자 실적이 부족한 외국 기업은 IPR 활용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지식재산권의 성격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특허는 기업 간 권리 다툼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국가 산업 경쟁력과 안보를 지키는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인공지능, 통신, 바이오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자국 중심 공급망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특허심판 제도 역시 산업 보호 장치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 생성형 AI 이미지(출처=kiip)  © 특허뉴스


우리 기업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분야는 반도체와 IT다. 이들 산업은 기술 집약도가 높고 글로벌 특허 포트폴리오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NPE 소송의 주요 표적이 되어 왔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미국에서 특허침해소송을 당할 경우, IPR을 통해 상대 특허의 유효성을 다투며 협상력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심리개시율이 낮아지고 재량적 거절 가능성이 커지면, 기업은 소송 방어에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특히 IPR이 개시되지 않을 경우 기업은 연방법원 소송에서 직접 무효 주장을 펼쳐야 하며, 이는 절차와 증거 기준, 배심 재판 리스크 등에서 훨씬 부담이 크다. 또한 방어 전략 수립 시점도 앞당겨져야 한다. 과거에는 침해소송이 제기된 뒤 IPR을 준비하는 방식이 가능했다면, 앞으로는 소송 가능성이 있는 특허를 사전에 모니터링하고, 무효자료와 회피설계 전략을 미리 확보하는 선제적 대응이 중요해진다.

 

보고서는 단순한 무효 논거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앞으로 우리 기업은 IPR 개시 가능성 자체를 별도로 분석해야 하며, 핀티브 기준에 따른 거절 리스크, 병행 소송 일정, 소송 지역, 미국 내 투자·공급망 관련 요소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특허 대응은 법무 부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전략·생산전략·미국 시장전략과 결합된 통합 리스크 관리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대응 전략도 다층화해야 한다. IPR 개시가 불확실한 경우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절차, 연방법원 소송, 라이선스 협상, 회피설계, 선제적 무효자료 확보 등을 조합해 활용해야 한다. ITC 절차는 수입금지명령 등 강력한 조치를 수반할 수 있어 공격과 방어 양면에서 전략적 활용 가치가 크다. 반면 연방법원 소송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초기 단계부터 기술 분석과 손해배상 리스크를 정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또한 미국 내 산업 기여도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 관리도 중요해질 수 있다. 미국 내 연구개발, 생산, 고용, 공급망 협력, 투자 현황 등은 향후 특허분쟁에서 직접적 쟁점은 아니더라도 정책적 환경을 판단하는 배경 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국가 안보와 산업 보호 논리가 강화되는 분야에서는 이러한 자료가 기업의 방어 논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이인혜 박사는 “미국의 특허 정책은 이제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 산업 보호와 국가 안보라는 프레임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은 IPR 개시 거절이 예상되는 경우 이를 고수하기보다 ITC나 연방법원 등 다른 절차를 전략적으로 혼합해 활용하는 입체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변화는 우리 기업에 분명한 경고를 던진다. 미국 특허분쟁에서 더 이상 ‘IPR을 내면 된다’는 공식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무효심판은 여전히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 자체가 자동으로 열리는 방어 절차는 아니다. 이제는 심리개시 가능성까지 예측하고, 병행 절차와 정책 환경을 함께 설계하는 고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미국 PTAB의 문턱 상승은 단순한 절차 변화가 아니다. 글로벌 지식재산 질서가 ‘강한 특허’, ‘산업 보호’, ‘국가 안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특허를 많이 보유하는 수준을 넘어, 분쟁 발생 전부터 권리 분석·무효자료 확보·소송 포트폴리오·공급망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전주기 IP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

 

기술 패권 경쟁의 시대, 특허는 더 이상 사후 방어 수단이 아니다.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전략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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