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는 한 가지 질문에서 출발했다. NASA를 이기고, DARPA 로봇대회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로봇은 왜 창고로 갔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점점 더 불편한 현실로 이어졌다. 우리는 왜 반복해서 세계 최고 기술을 만들어 놓고도, 그 기술이 살아남을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가.
답은 기술에 있지 않았다. 정책과 구조에 있었다. 한국의 로봇·AI R&D는 여전히 ‘이기는 것’에 맞춰 설계돼 있다. 대회에서 우승하고, 성능 비교에서 앞서고, 목표 지표를 달성하면 과제는 끝난다. 세계 1위는 성공의 증거이자 동시에 종료 신호가 된다. 그러나 기술사업화의 관점에서 보면, 그 순간이야말로 기술이 가장 취약해지는 시점이다.
기술은 실험실과 대회 무대에서는 살아남지만, 시장과 산업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 안전, 책임, 규제, 비용, 수요, 그리고 누가 그 기술을 계속 떠안고 갈 것인가라는 문제가 동시에 등장한다. 미국은 이 구간을 정책의 영역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DARPA 대회 이후에도 돈을 끊지 않는다. 기술을 분해해 군으로 보내고, 산업으로 보내고, 우주와 물류로 흘려보낸다. 프로젝트는 끝나도 기술의 삶은 계속된다.
반면 우리는 이 구간을 방치해 왔다. R&D는 연구자의 책임이고, 사업화는 시장의 몫이라는 식으로 역할을 나눈다. 그 결과 세계 최고 기술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상태로 남는다. 조직이 해체되면 기술도 멈추고, 예산이 끊기면 IP의 시간도 함께 멈춘다. DARPA 로봇대회 우승 로봇이 창고로 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현대자동차에서 살아난 이유는 단순하다. 기술이 바뀐 것이 아니라, 자리가 바뀌었다. 로봇을 하나의 제품으로 보지 않고, 기존 산업 안에서 계속 쓰일 수 있는 IP로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공장과 물류, 제조와 모빌리티라는 현실적인 무대가 주어지자, 떠돌던 기술은 비로소 생명을 얻었다. 이는 로봇 기술의 성공이 아니라, R&D 이후 단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 사례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세계 1위를 계속 목표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세계 1위 이후를 목표로 삼을 것인가. 이를 위해 로봇과 AI R&D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R&D의 목표 설정 단계에서부터 ‘출구’를 의무화해야 한다. 대회 우승이나 성능 달성이 아니라, 이 기술이 5년 뒤 어느 산업에서 쓰일 것인지, 어떤 조직이 이어받을 것인지가 명시돼야 한다. 기술 로드맵이 아니라, 시장 로드맵이 함께 제출돼야 한다.
둘째, 과제 종료는 기술의 끝이 아니라 ‘이관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연구가 끝나는 시점에 기술은 해체돼야 한다. 단, 폐기가 아니라 분산 이관이다. 군, 공공, 산업, 민간 기업으로 기술과 IP가 나뉘어 이동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조직은 해체될 수 있지만, 기술은 반드시 어딘가로 흘러가야 한다.
셋째, IP 전략을 연구 성과 관리가 아니라 사업권 설계의 도구로 바꿔야 한다. 특허 몇 건을 냈는지가 아니라, 누가 어떤 조건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공공 기술일수록 민간이 부담 없이 가져가 쓸 수 있는 권리 구조가 필요하다. 기술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쓰이게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넷째, R&D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 세계 1위 여부가 아니라, 기술의 생존 기간과 사용 빈도를 평가해야 한다. 과제 종료 후 3년, 5년이 지난 뒤에도 해당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면, 그때가 진짜 성공이다. 기술이 살아남지 못했다면, 아무리 화려한 성과도 미완이다.
로봇과 AI는 이제 기술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구조 경쟁의 대상이다. 누가 더 잘 만드느냐보다, 누가 더 오래 쓰게 하느냐의 싸움이다. 세계 1위를 창고로 보내는 나라와, 세계 1위를 출발점으로 삼는 나라의 차이는 기술력이 아니라 정책의 관점에서 갈린다.
이 연재를 통해 던진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다음 세계 1위 기술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또다시 박수만 치고 등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그 기술이 평생 머물 자리를 함께 설계할 것인가. 로봇과 AI의 미래는 더 이상 연구실에 있지 않다. 정책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저작권자 ⓒ 특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김주회 박사, DARPA로보틱스챌린지, KAIST휴머노이드로봇, 기술사업화실패, 연구개발정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특허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