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출혈성 대장균, 혈전을 키우는 ‘숨은 공범’ 드러났다

RTX 독소가 적혈구를 ‘혈전 제조기’로 바꾸는 새 병리 경로 규명

염현철 기자 | 기사입력 2026/02/10 [17:42]

장출혈성 대장균, 혈전을 키우는 ‘숨은 공범’ 드러났다

RTX 독소가 적혈구를 ‘혈전 제조기’로 바꾸는 새 병리 경로 규명

염현철 기자 | 입력 : 2026/02/10 [17:42]

▲ RTX 계열 독소(EhxA)에 의해 적혈구가 응고 촉진 상태로 전환되고 정맥 혈전이 형성되는 과정(모식도) / 장출혈성 대장균(EHEC)이 분비하는 RTX 계열 독소 EhxA가 적혈구 막에 막 구멍(pore)을 형성하면 적혈구 내부로 칼슘 유입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적혈구 표면에 인지질 PS(포스파티딜세린) 노출이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미세소포 형성과 적혈구 형태 변화(원반형→가시형→구형→용혈)가 동반될 수 있다. PS가 노출된 적혈구는 응고 촉진 활성이 높아져 프로트롬빈→트롬빈 생성이 강화되며, 적혈구–혈관 내피세포 부착과 적혈구 응집이 촉진된다. 이러한 연쇄 반응은 혈관 내 응고 반응을 증폭시켜 최종적으로 정맥 혈전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개략적으로 보여준다.(그림 및 설명=충남대학교 약학대학 정한영 교수)  © 특허뉴스

 

흔한 식중독으로 여겨지던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이 일부 환자에게서 치명적인 혈전 합병증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새롭게 밝혀졌다. 그동안 혈관 손상을 유발하는 시가독소가 주범으로 지목돼 왔지만, 국내 연구진은 혈전 형성을 직접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핵심 축을 규명하며 질병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

 

한국연구재단은 충남대학교 정한영 교수와 한양대학교 배옥남 교수 공동연구팀이 장출혈성 대장균이 분비하는 RTX 계열 독소(EhxA)가 적혈구를 응고 촉진 상태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병리 기전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RTX 독소는 적혈구 막에 미세한 구멍을 형성해 세포 내부로 칼슘 유입을 증가시키고, 이 과정에서 세포막 구성 성분인 인지질(PS)을 적혈구 표면으로 노출시킨다. 인지질이 노출된 적혈구는 더 이상 산소 운반에 그치지 않고 혈액 응고 반응을 증폭시키는 ‘혈전 제조기’ 역할을 하게 된다.

 

시험관 실험 결과, RTX 독소에 노출된 적혈구는 혈액 응고 효소인 트롬빈 생성을 크게 촉진했고, 혈관 내피세포와의 부착과 적혈구 응집 현상도 현저히 증가했다. 이러한 연쇄 반응은 혈관 내 응고 반응을 가속화해 정맥 혈전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다. 더 나아가 동물실험에서도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 시 적혈구의 형태 변화와 혈전 형성이 증가한 반면, RTX 독소가 결손된 균주에 감염된 경우에는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에 따른 혈전 합병증을 ‘시가독소–혈관 손상’ 중심으로만 설명하던 기존 관점을 넘어, ‘RTX 독소–적혈구’라는 새로운 병리 경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진은 이 경로가 향후 RTX 독소를 표적으로 한 중화·차단 전략 개발과 함께, 적혈구 변화 지표를 활용한 혈전 위험도 평가 및 조기 대응 전략 수립의 과학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연구 성과는 다학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Science Advances)에 2월 7일 온라인 게재됐다.

 

논문명은 RTX-family toxin EhxA drives morphological remodeling and thrombogenesis in RBCs during enterohemorrhagic Escherichia coli infec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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