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4개를 한 번에 ‘레고처럼’ 조립했다"... UNIST·DGIST, 신약·신소재 판 바꿀 ‘라디칼 릴레이’ 합성법 세계 첫 구현

2~3단계 한계 넘고 4개 이상 화합물 정밀 순차 결합
저분자 의약품과 고분자 소재 사이 ‘새 화학 합성 영역’ 개척

염현철 기자 | 기사입력 2026/05/15 [01:40]

"분자 4개를 한 번에 ‘레고처럼’ 조립했다"... UNIST·DGIST, 신약·신소재 판 바꿀 ‘라디칼 릴레이’ 합성법 세계 첫 구현

2~3단계 한계 넘고 4개 이상 화합물 정밀 순차 결합
저분자 의약품과 고분자 소재 사이 ‘새 화학 합성 영역’ 개척

염현철 기자 | 입력 : 2026/05/15 [01:40]

▲ 4성분 결합 반응 개념도 / (상단) 알킬 할로겐화물, 알켄, 1,3-엔아인, 아릴 할로겐화물이 순차적으로 결합해 여러 탄소-탄소 결합이 한 번에 형성되는 과정을 나타낸 그림. 각 반응 단계가 정해진 순서로 진행되며 부산물 생성이 억제된다. (하단) 기존 교차 짝지음 반응(2~3성분 결합)과 고분자 중합 반응(반복 결합) 사이에서, 여러 성분을 한 번에 순서대로 연결하는 본 연구의 다성분 결합 방식을 비교한 모식도.(그림 및 설명=UNIST)  © 특허뉴스

 

복잡한 신약 후보물질이나 첨단 기능성 소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화학 반응 단계를 거쳐야 했다. 원하는 분자를 만들기 위해 두 개씩, 많아야 세 개 수준의 화합물을 단계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시간·비용·부산물 문제는 늘 따라붙었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서로 다른 4가지 화합물을 단 한 번의 반응으로 순서 있게 결합시키는 새로운 화학 합성법을 개발하며, 분자 설계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가능성을 제시했다.

 

UNIST 화학과 홍성유·로드 얀우브(Jan-Uwe Rohde) 교수팀은 DGIST 서상원·정병혁 교수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니켈 촉매 기반 ‘라디칼 릴레이(radical relay)’ 합성 전략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이번 기술은 4개의 서로 다른 화학 성분을 한 번의 반응 안에서 원하는 순서대로 연결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기존 다성분 합성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선 성과로 평가된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Advanced Science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화학 반응의 가장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였던 ‘통제된 다중 결합’이다. 일반적으로 화합물이 많아질수록 반응 경로는 복잡해지고, 엉뚱한 부산물 생성이나 무제한 중합 반응 가능성이 커진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라디칼의 성질 자체를 설계했다. 라디칼은 반응성이 매우 높은 중간체로, 일반적으로 제어가 어렵지만 연구진은 라디칼이 친전자성(electrophilic)과 친핵성(nucleophilic)을 번갈아 띠도록 반응 흐름을 정밀 설계했다.

 

이 구조에서는 앞선 반응 단계에서 생성된 라디칼이 다음 결합 대상을 선택적으로 유도하며, 마치 육상 릴레이 경기에서 바통이 다음 주자에게 정확히 전달되듯 반응이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니켈 촉매는 이 과정의 지휘자 역할을 한다. 초기 라디칼을 생성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를 선택적으로 포획해 반응을 안정적으로 종료시킨다. 즉, 반응을 시작하게도 하고, 통제 불가능한 폭주를 막아주기도 하는 셈이다. 이 덕분에 복잡한 분자 구조를 단 한 번의 공정으로 조립하면서도 정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연구진은 알킬 할로겐화물, 알켄, 1,3-엔아인, 아릴 할로겐화물 등 4개 성분을 순차적으로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조건에 따라 5개 화합물 연결로까지 확장 가능성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반응 성공을 넘어, 다성분 합성 플랫폼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보여준다.

 

이번 기술의 산업적 의미는 매우 크다. 신약 개발에서는 복잡한 유기 분자를 효율적으로 설계할수록 후보물질 탐색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은 낮아진다. 특히 항암제, 표적 치료제, 기능성 바이오 분자처럼 구조가 복잡한 약물일수록 정밀 다중 결합 기술은 경쟁력이 된다.

 

소재 산업에서도 가능성은 크다. 지금까지 저분자 정밀합성과 고분자 대량합성은 서로 다른 영역으로 발전해 왔지만, 이번 연구는 그 중간 지대를 열었다. 이는 기능성 플라스틱, 스마트 소재, 차세대 전자재료처럼 ‘정교하면서도 확장 가능한’ 구조 설계가 필요한 분야에서 새로운 화학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즉, 이번 연구는 단순히 화합물을 더 많이 붙이는 기술이 아니라, 분자를 ‘설계 가능한 구조물’처럼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한 것이다.

 

연구팀은 “그동안 화학 합성은 정밀 저분자와 고분자 영역으로 나뉘어 발전해 왔지만, 이번 연구는 그 사이에서 여러 성분을 한 번에 순서대로 연결하는 새로운 합성 방식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홍성유 교수 역시 “신약 개발과 신소재 설계에 중요한 기반 기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화학 산업은 종종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래 산업을 바꾼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신소재 역시 결국 원하는 분자를 얼마나 빠르고 정밀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서 출발한다. 이번 ‘라디칼 릴레이’는 화학 반응을 더 많이 하는 기술이 아니다. 더 적은 단계로, 더 정교하게, 더 전략적으로 분자를 설계하는 ‘분자 조립 혁신’에 가깝다.

 

이번 연구에는 전지환, 김다혜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논문명은 Nickel-Catalyzed Twofold Conjunctive Coupling via Philicity-Alternating Radical Rela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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