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만 흘렸는데 전자가 돌기 시작했다"... UNIST, 자석 없는 차세대 스핀 반도체 원리 첫 실시간 규명직선 이동하던 전자가 나선형 구조에서 ‘회전’으로 바뀌며 스핀 깨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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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수철 모양과 같이 꼬인 물질에 전류가 흐르면서 스핀이 정돈되는 현상에 대한 모식도(그림 및 설명=UNIST) © 특허뉴스 |
전자산업의 미래 경쟁이 ‘더 작은 반도체’에서 ‘전자 자체의 성질 제어’로 이동하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전류만으로 전자의 숨겨진 회전 특성을 깨워내는 양자 메커니즘을 실시간으로 규명하며 차세대 정보소자 개발의 핵심 단서를 제시했다. 자석이나 복잡한 자기장 없이 전기 신호만으로 전자의 스핀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다 명확해지면서, 저전력·고속 스핀트로닉스 시대를 앞당길 기반 연구로 주목된다.
UNIST 물리학과 박노정 교수 연구팀은 미국 미주리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와의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나선형(키랄) 1차원 전도체 내부에 전류가 흐를 때 전자의 직선 운동이 궤도각운동량과 스핀 분극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양자 제일원리 기반 실시간 계산으로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ACS Nano에 게재되며,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주목받던 ‘키랄 유도 스핀 선택성(CISS)’의 동작 구조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성과로 평가된다.
전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양자적 회전 특성이 있다. 하나는 자전과 유사한 ‘스핀(spin)’, 다른 하나는 공전과 유사한 ‘궤도각운동량(orbital angular momentum)’이다. 일반적으로 이 성질들은 서로 상쇄되거나 외부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특정한 구조적 조건에서는 전자의 이동 방식 자체가 회전 특성을 유도할 수 있다. 연구팀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핵심은 ‘나선형 구조’다. 연구진은 나선형 셀레늄 원자선에 전기장을 가해 전류를 흐르게 한 뒤, 실시간 시간 의존 밀도범함수이론(rt-TDDFT)을 통해 전자 움직임을 추적했다. 그 결과, 전자가 단순히 직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 구조를 따라 흐르면서 일부 운동량이 회전 운동 성격의 궤도각운동량으로 전환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쉽게 말해, 직선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나선형 트랙에 진입하면서 회전 운동 특성을 얻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궤도각운동량은 스핀-궤도 결합(spin-orbit coupling)을 통해 전자의 스핀 분극으로 이어졌다. 즉, 전류가 단순히 전자를 이동시키는 수준을 넘어, 전자의 ‘회전 방향성’까지 유도한 것이다.
특히 이번 연구는 이 현상이 특정 임계 전류 이상에서만 발생하며, 외부 전기장을 제거한 뒤에도 일정 부분 유지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외부 전기장이 직접 스핀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나선형 구조 속을 흐르는 전류 자체가 전자의 양자 상태를 재구성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전기 신호만으로 스핀 상태를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차세대 반도체 구조의 방향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전자소자는 전자의 전하(charge)를 이용하지만, 스핀트로닉스는 전자의 스핀까지 정보 처리에 활용해 더 낮은 전력, 더 빠른 속도, 더 높은 집적도를 구현하려는 기술이다. 문제는 기존 스핀 제어가 자석이나 복잡한 자기 구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반면 이번 연구는 전류와 구조 설계만으로 스핀 제어 가능성을 제시하며, 스핀트로닉스뿐 아니라 궤도각운동량 기반 정보처리인 ‘오비트로닉스(orbitronics)’ 분야까지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향후 메모리, 양자컴퓨팅, 초저전력 AI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조적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CISS 현상은 바이오 분자, 유기전자소자, 분자반도체 등과도 연결될 수 있어, 반도체를 넘어 생체 전자공학과 차세대 센서 분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조적 비대칭성(키랄성)이 전자의 양자 선택성을 만든다는 점에서, 소재 설계 자체가 정보처리 구조가 되는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박노정 교수는 “이번 연구는 키랄 유도 스핀 선택성이 실제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전자의 이동 과정 차원에서 규명한 것”이라며 “별도 자석 없이 전기 신호만으로 작동하는 스핀트로닉스·오비트로닉스 소자 설계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성과는 전류가 단순한 에너지 전달 수단을 넘어, 전자의 양자적 정체성 자체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의 미래가 더 이상 전자를 ‘흐르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자를 ‘어떻게 회전시키고 선택할 것인가’로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자산업의 다음 경쟁은 미세화만이 아니다. 전자의 숨겨진 회전 성질까지 설계하는 ‘양자 구조 경쟁력’이 새로운 승부처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논문명은 Current-Driven Symmetry Breaking and Spin-Orbit Polarization in Chiral Wires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