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특허를 직접 푼다"... ‘연합 강제실시규정’ 시행, 위기 대응 IP 질서 대전환

팬데믹 교훈 반영한 초국경 통합 제도... 공공 이익과 특허권 충돌 ‘새 변수’ 부상

이성용 기자 | 기사입력 2026/05/07 [17:55]

"EU가 특허를 직접 푼다"... ‘연합 강제실시규정’ 시행, 위기 대응 IP 질서 대전환

팬데믹 교훈 반영한 초국경 통합 제도... 공공 이익과 특허권 충돌 ‘새 변수’ 부상

이성용 기자 | 입력 : 2026/05/07 [17:55]

▲ 출처=생성형 AI 이미지  © 특허뉴스

 

유럽연합(EU)이 초국경 위기 상황에서 특허권을 직접 조정할 수 있는 ‘연합 강제실시규정’을 공식 시행하면서, 글로벌 지식재산(IP) 질서에 구조적 변화가 시작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드러난 공급망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향후 의약품·바이오 산업을 중심으로 특허권 보호와 공공 이익 간 충돌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26년 1월 19일 발효된 이번 규정은 2025년 12월 EU 관보에 게재된 이후 본격 시행에 들어간 것으로, EU 차원에서 단일하게 적용되는 ‘연합 강제실시(Union compulsory licence)’ 제도를 핵심으로 한다. 이는 기존처럼 각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강제실시를 결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EU 집행위원회가 직접 위기 상황을 판단하고 전 회원국에 효력을 미치는 실시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제도 도입의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망 구조 변화가 자리한다. 의약품과 백신, 핵심 기술 제품 생산이 여러 국가에 걸쳐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국가별 상이한 강제실시 절차는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EU는 단일특허(UP) 및 통합특허법원(UPC) 체계와 연계해, 위기 상황에서 IP 집행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편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이 발간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규정의 가장 큰 변화는 EU 집행위원회가 ‘위기 관련 제품’에 대해 직접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적용 대상에는 특허뿐 아니라 실용신안, 추가보호증명서(SPC)까지 포함되며, 해당 실시권은 비독점적이고 양도 불가능한 형태로 제한적으로 부여된다.

 

또한 생산된 제품은 원칙적으로 EU 역내 공급에 한정되며, 제품 식별 표시와 생산·유통 기록 의무를 통해 엄격하게 관리된다. 수출 역시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공중보건 목적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표면적으로는 권리자 보호 장치도 마련돼 있다. 강제실시가 발동되더라도 권리자에게는 ‘적정 보상금’이 지급되며, 해당 보상은 매출 규모, 가상의 라이선스 대가, 공적 지원 여부, 연구개발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된다. 그러나 이 보상 기준의 구체성과 객관성은 향후 가장 큰 분쟁 요소로 지목된다.

 

특히 ‘위기 및 비상 상황’의 해석 범위가 향후 제도의 방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어떤 상황을 위기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강제실시 발동 빈도와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특허권 보호의 안정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문명섭 박사는 “이번 제도는 EU 통합 공급망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조치”라며 “단일특허 제도와 맞물려 지식재산 집행의 일원화를 강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발동 요건과 보상 기준의 해석에 따라 권리자와 공공 이익 간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주목된다. 현재 유럽 시장에 진출해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위기 상황 발생 시 예상치 못한 강제실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기술수출이나 라이선스 계약을 기반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일수록, 해당 제도의 영향은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문명섭 박사는 “새로운 강제실시제도가 비독점적 권리 부여와 엄격한 수량 제한 등 권리 행사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설정하고 있어 당장 우리 기업에 미칠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을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강제실시 발동 요건인‘위기 및 비상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 방향이 향후 지식재산권 보호 체계와 충돌할 여지가 있는 만큼 EU 내 특허권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은 보상금 산정 절차 등에서 권리 보호를 극대화할 수 있는 대응 전략을 준비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규정은 단순한 법제 변화가 아니라, IP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변화를 반영한다. 기술 독점 권리로서의 특허와 공공재로서의 기술 접근성 사이에서, 국가 단위를 넘어선 ‘초국경 조정 메커니즘’이 등장했다는 점에서다.

 

결국 EU의 이번 조치는 향후 글로벌 IP 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위기 상황에서 공공 이익을 위해 특허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선례가 확산될 경우, 다른 국가나 지역에서도 유사한 제도 도입 논의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재산 보호와 공공의 이익 사이의 균형. EU의 선택은 그 균형점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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