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을 ‘설계’한다"... 용매 하나로 반도체 성능·안정성 동시에 끌어올린다

한양대 연구팀, 분자 반응성 정밀 제어로 유기 반도체 공정 패러다임 전환... 열전·트랜지스터·디스플레이 적용 기대

염현철 기자 | 기사입력 2026/05/07 [00:18]

"도핑을 ‘설계’한다"... 용매 하나로 반도체 성능·안정성 동시에 끌어올린다

한양대 연구팀, 분자 반응성 정밀 제어로 유기 반도체 공정 패러다임 전환... 열전·트랜지스터·디스플레이 적용 기대

염현철 기자 | 입력 : 2026/05/07 [00:18]

▲ 용매의 극성에 따른 루이스 페어 도펀트의 형성 메커니즘 / 좌측 상단은 용매의 극성에 따라 루이스 산 BCF와 용매 간 부가체의 해리 속도가 달라지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좌측 하단은 루이스 페어 도펀트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때 BCF-용매 부가체의 해리 속도가 루이스 페어 도펀트의 형성 속도를 결정합니다. 우측은 루이스 염기 DDQ가 BCF와 루이스 페어를 이룬 이후에 도핑 세기가 크게 증가하는 모습을 전자 밀도와 에너지 준위 변화를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그림 및 설명=한양대학교 장재영 교수)  © 특허뉴스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인 ‘도핑’을 분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기존에는 강한 반응성으로 인해 제어가 어려웠던 도핑 과정을 용매의 특성만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차세대 유기 반도체 소자의 성능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정 기준이 제시됐다.

 

한국연구재단은 한양대학교 에너지공학과 장재영 교수 연구팀이 용매의 극성을 활용해 루이스 페어 도펀트의 반응성을 제어하고, 유기 반도체의 전기적 성능을 안정적으로 향상시키는 공정 전략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단순 소재 개발을 넘어, 도핑 반응의 메커니즘 자체를 재설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기 반도체에서 도핑은 전하 농도를 조절해 소자의 성능을 최적화하는 필수 공정이다. 특히 루이스 페어 도펀트는 높은 도핑 효율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차세대 소재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반응성이 지나치게 강해 도핑 수준을 정밀하게 조절하기 어렵고, 공정 과정에서 반도체 박막이 손상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도펀트 자체가 아닌 ‘용매’에 주목했다. 실험 결과, 용매의 극성에 따라 도펀트의 형성과 활성화 메커니즘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극성이 높은 용매에서는 도펀트가 용매와 결합해 반응이 억제되지만, 적절한 극성을 가진 용매에서는 이 결합이 해리되며 최적의 도핑 반응이 유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략을 실제 공정에 적용한 결과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연구팀이 에틸아세테이트 용매를 활용한 도핑 공정을 구현한 결과, 기존 염화철(FeCl3) 기반 도핑 대비 전력인자가 2배 이상 향상됐다. 이는 단순히 도핑량 증가에 따른 효과가 아니라, 분자 배열이 보다 정교하게 유지되고 전하 이동 경로가 효율적으로 형성된 결과로 확인됐다.

 

또한 열적 안정성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 80°C 고온 환경에서도 저항 변화가 기존 대비 100배 이상 억제되며, 장시간 사용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소자 성능 유지가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는 유기 반도체의 상용화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로 꼽혀온 내구성 문제 해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번 연구는 반도체 공정의 접근 방식을 바꾸는 의미를 가진다. 기존에는 도펀트 물질 자체의 설계에 집중했다면, 이번 기술은 공정 환경과 분자 반응 메커니즘의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즉, 소재가 아닌 ‘공정 조건’을 통해 성능을 제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활용 가능성도 광범위하다. 열전 소자를 비롯해 유기 트랜지스터, 디스플레이, 광전자 소자 등 다양한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 적용될 수 있으며, 특히 저전력·고효율 특성이 요구되는 미래 전자기기에서 핵심 기술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향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소자 성능 극대화를 위한 후속 연구도 진행 중이다.

 

장재영 교수는 “도펀트 자체가 아니라 용매와 반응 메커니즘을 함께 설계함으로써 반도체 성능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며 “차세대 유기 전자소자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핵심 공정 기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되며 기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았고, 오는 8월 7일 인사이드 백 커버 논문으로도 게재될 예정이다.

 

AI와 데이터 중심 시대에서 반도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연구는 단순 성능 향상을 넘어, 반도체 제조 공정의 근본적인 접근 방식을 재정의하는 기술로 평가되며, 미래 전자소자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논문명은 Solvent-Mediated Reactivity Control of Lewis-Paired Dopants as a Versatile Strategy for Tunable and Stable Doping of Organic Semiconductor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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