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연재②] 미국은 왜 DARPA 대회 이후에도 돈을 끊지 않았는가기술을 ‘성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보는 나라
같은 DARPA 로봇대회에 참가했던 미국 팀들은 패배했다. NASA도, MIT도, 카네기멜런대도 우승하지 못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대회가 끝난 이후의 풍경이다. 이들 가운데 “끝났다”며 프로젝트를 접은 팀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대회 이후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됐고, 더 명확한 역할이 부여됐다.
미국에게 DARPA 로봇대회는 경쟁의 종착점이 아니었다. 시작점에 가까웠다.
DARPA가 이 대회를 설계한 목적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우승 로봇을 뽑는 것이 아니라, 재난·군사·우주·산업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기술 조각들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대회 이후 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각 팀의 기술을 해체해 흡수했다. 보행 기술은 군으로, 원격 조작 기술은 우주로, 센서와 제어 기술은 산업 자동화로 흘러 들어갔다.
이 차이는 정책이 기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기술을 ‘성과물’로 보지 않는다. 기술은 완성품이 아니라, 계속 사용되고 변형돼야 할 자산이다. 그래서 대회가 끝나도 예산은 끝나지 않는다. 기술을 어디에 쓸 것인지, 누가 가져갈 것인지, 어떤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단계가 그 다음에 온다.
반면 우리는 달랐다. 세계 1위를 한 순간, 정책의 목표는 달성된 것으로 처리됐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투자할 이유도 없었다. 기술은 성공했고, 과제는 종료됐다. 그러나 기술을 사업으로 키우는 단계는 그때부터 시작돼야 했다. 미국이 ‘이제부터’를 고민할 때, 우리는 ‘여기까지’를 선언했다.
IP와 기술사업화 관점에서 보면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미국은 대회 이전부터 기술의 출구를 염두에 둔다. 군사, 공공, 민간 산업 중 어디로 갈지 미리 나눠 설계하고, 각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권리 구조를 분산시킨다. 기술 하나가 하나의 제품으로 살아남지 못해도, 기술의 일부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쓰이게 만든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로봇이 해체돼도 기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프로젝트는 끝나도 IP는 이동한다. 반면 우리는 로봇을 그대로 보관한다. 기술도, 권리도, 조직도 함께 멈춘다. 세계 최고 성능의 로봇이 창고에 남아 있는 동안, 미국의 로봇 기술은 형태를 바꿔 산업 속으로 스며든다.
이 차이는 예산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철학의 문제다. 우리는 아직도 R&D를 ‘이기기 위한 비용’으로 생각한다. 미국은 R&D를 ‘쓰임을 찾기 위한 투자’로 본다. 그래서 미국은 우승하지 않아도 돈을 끊지 않고, 우리는 우승했기 때문에 돈을 끊는다.
DARPA 로봇대회 이후의 행보는 이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은 패배한 기술로 산업을 만들었고, 우리는 우승한 기술을 창고에 넣었다. 이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벌어진다.
다음 회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왜 구글과 소프트뱅크를 거쳐 결국 현대자동차에 인수됐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로봇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IP 전략의 재배치였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술은 떠돌았지만, 결국 자리를 찾았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시간을 얼마나 허비했느냐다.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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