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움직이는 세균, 자연의 통계 법칙을 깨다"... UNIST·스탠포드, 비평형 입자 분포 새 법칙 발견청국장균이 보여준 물리학의 반란... 살아있는 입자, ‘끼리끼리 모임’ 법칙 뒤집다
살아 있는 입자가 통계의 법칙을 거스르다
물리학의 오래된 원칙 중 하나는 ‘끼리끼리 논다’는 법칙이다. 즉, 물과 기름처럼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은 섞이지 않으며, 미세 입자들도 자신이 에너지를 덜 쓰는 쪽, 즉, 더 안정적인 상(phase)에 모이는 통계적 분포를 따른다. 하지만 티끌보다 작은 세균이라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 법칙을 깰 수 있다.
UNIST 정준우 교수(물리학과), 로버트 미첼 교수(생명과학과), 그리고 스탠포드대학교 쇼 타카토리 교수 공동연구팀은 스스로 운동하는 미생물 입자의 새로운 분포 법칙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물리학 분야의 최고 권위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에 9월 16일자로 게재됐다.
청국장균으로 입증한 ‘비평형 통계역학’의 새로운 장
연구팀은 청국장 발효균(고초균, Bacillus subtilis) 을 이용해, 서로 섞이지 않는 두 종류의 액체(덱스트란 수용액과 폴리에틸렌글리콜 수용액) 속에서 세균의 분포를 관찰했다. 고초균의 표면은 당 성분으로 덮여 있어 원래 덱스트란 상(phase)에 끌리는 성질이 있지만, 표면처리를 통해 폴리에틸렌글리콜 상으로의 선호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실험 결과, 죽은 세균(움직이지 않는 세균) 은 에너지가 낮은 한쪽 상에만 모였지만, 살아있는 세균은 양쪽 상에 고르게 분포했다. 즉, 세균의 ‘운동성’이 통계 분포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현상은 기존의 열적 요동(thermal fluctuation)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세균의 ‘자기 추진력(active motion)’이 새로운 물리 법칙을 지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피코 뉴턴’의 세계에서 벌어진 힘의 대결
연구진은 광학집게(optical tweezers)를 이용해 세균이 특정 액상에 끌리는 힘을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 세균을 한 상에 붙잡아두는 힘은 약 1피코뉴턴(pN) 으로 나타났다. 이는 머리카락 한 올이 느끼는 중력보다 천만 배나 작은 힘이다. 반면, 세균이 스스로를 움직이는 추진력은 약 10피코뉴턴, 즉 가두는 힘보다 10배나 강했다. 결국, 세균은 자신의 에너지를 이용해 통계적으로 불가능했던 영역까지 ‘뛰쳐나갈 수 있는’ 존재임이 입증된 셈이다.
물리·화학·생물 경계를 허문 융합연구의 결정체
이번 연구에는 UNIST 천지용 박사(현 조지아텍 박사후 연구원) 와 스탠포드 최규환 박사후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팀은 “이번 성과는 비평형 상태에서 콜로이드 입자 간 상호작용을 정량화한 세계 최초의 연구”라며, “비평형 통계역학 및 계면-입자 간 상호작용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넓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UNIST 정준우 교수는 “세균이 특정 조직에 자리 잡는 원리를 설명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단백질 정제·바이오칩 설계·미세로봇 제어 기술에도 응용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살아 있는 통계역학’의 탄생
이 연구는 미생물의 운동성이라는 생명현상을 물리학적 시각으로 해석한 융합 연구로, 비평형 상태에서도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새로운 통계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즉, 생명체의 ‘움직임’ 그 자체가 새로운 물리 법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논문명은 Motility Modulates the Partitioning of Bacteria in Aqueous Two-Phase System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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