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비스트’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인기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는 2016년 말 원 소속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이하 큐브)와 전속계약이 만료된 뒤 ‘어라운드어스’와 새롭게 계약했다. ‘비스트’ 상표권을 가지고 있던 큐브는 같은 이름의 새로운 그룹을 결성한다고 밝히자, 기존 멤버들은 ‘비스트’ 대신 ‘하이라이트’라는 팀명으로 재데뷔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큐브와 어라운드어스가 ‘비스트’ 상표 사용에 대한 상호 합의를 마치며 ‘하이라이트’는 원래 그룹명이었던 ‘비스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을 찾기까지 무려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돌 그룹의 상표권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약 20년 전, 장수 아이돌 그룹 ‘신화’는 2003년 SM엔터테인먼트(이하SM)와 계약이 만료된 후 새 소속사인 굿이엠지와 계약을 맺었다. 당시 SM과 굿이엠지는 상표사용에 대한 합의를 통해 2005년 ‘신화’를 상표로 등록했고, 이듬해 준미디어라는 회사로 상표권을 양도했다. 준미디어는 이후 ‘신화’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음원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후 그룹 신화의 멤버들은 신화컴퍼니라는 소속사로 독립했고, 마찬가지로 준미디어와 상표사용에 관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신화컴퍼니와 준미디어가 상표권 사용에 대한 소송이 발생했고, 신화컴퍼니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사명을 신컴엔터테인먼트로 변경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신화’의 손을 들어줘, 결국 ‘신화’는 그룹명에 대한 상표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같은 SM 소속이었던 ‘H.O.T’도 해체 후 재결합 콘서트 소식이 전해진 이후 SM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김 모씨로부터 상표 및 로고 무단사용에 대한 형사소송과 상표사용금지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결국 ‘H.O.T’도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상표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장시간의 소송 끝에 그룹명에 대한 상표권을 찾은 아이돌이 있는 반면, 전 소속사와 합의에 이르지 못해 그룹명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하이라이트의 경우도 오랜 시간 ‘비스트’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챠트 역주행의 주인공인 ‘브레이브걸스’ 또한 그룹명을 사용하지 못해 ‘브브걸’로 새롭게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외에도 ‘어쿠루브’라는 어쿠스틱 그룹 역시 전 소속사와의 상표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현재 ‘마인드유’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룹 ‘티아라’ 멤버들도 자신들의 이름을 지켜냈다. 전 소속사 MBK엔터테인먼트는 2017년 계약만료 전 뒤늦게 ‘티아라 T-ARA'상표권을 출원했다. 이에 티아라 멤버 4명은 특허청에 MBK의 상표 등록이 거절돼야 한다는 정보제출서를 제출했고, 특허청은 “티아라는 널리 알려진 저명한 연예인 그룹 명칭을 소속사에서 출원한 경우에 해당되는 상표이므로 상표법 제34조 1항 제6호에 해당되여 등록을 받을 수 없다”며 구성원의 동의 없이는 상표권 출원이 불가능하다고 거절사유를 밝히며 티아라 멤버들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전 소속사와의 원만한 합의로 소송까지 번지지 않고 상표권을 사용하게 된 사례도 있다. 보이그룹 유키스가 상표권에 대한 금액 지불 후 상표를 양도 받은 바가 있고, 카라와 소녀시대, god는 공연이나 앨범 발매 시 공동 제작을 통해 수익을 나누는 방법을 택했다.
또한 전 소속사의 과감한 결정으로 계약이 끝난 그룹에 상표를 무상으로 양도한 경우도 있다. 울림엔터테인먼트가 인피니티에게, 또 JYP엔터테인먼트가 갓세븐의 향후 활동을 위해 상표권을 흔쾌히 양도한 케이스가 있다.
대부분의 소속사는 아이돌 그룹을 통해 제3자가 무단으로 이익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룹명을 상표권으로 등록해 두고 있다. 브랜드 가치와 그룹 활동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업계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상표법상 출원이나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표의 경우, 상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든 상표 등록을 낼 수 있는 선출원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룹 신화의 상표권 분쟁 이후 소속사의 상표권 선 확보에 대한 인식은 더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엔터 업계 전속계약서에는 계약 종료 후 소속사가 아티스트에게 그룹명 상표권을 이전할 의무가 없다는 취지의 문구를 포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표준전속계약서에는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 상표권 등의 권리를 기획사가 가수에게 이전해야 한다는 조항과 함께 기획사가 상표 개발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는 등의 특별한 기여를 한 경우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권고 사안이며, 법적 구속력이 없어 소속사가 대가를 요구하면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그룹명과 관련해서는 맴버의 퍼블리시티권, 소속사의 상표권이 충돌하고 전속 계약의 구체적 내용에 따라 분쟁의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하이브와 어도어 민희진 대표 간 갈등 사례에서도 상표권 분쟁은 예견된 일이 아닐까 싶다. 민희진 대표가 뉴진스 맴버들을 하이브로부터 독립시킨다 해도 뉴진스라는 그룹명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양측의 대립 강도를 봤을 때 하이브가 뉴진스 상표를 양도해 줄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각적인 활동이 필요한 아이돌 그룹의 경우 새로운 그룹명과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재기하기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며, 소속사와의 분쟁 역시 미봉합한 채로 장기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많은 기대를 품고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힘든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전세계적으로 두터운 팬덤과 인기를 끌고 있는 K팝 시장에서 이러한 문제로 인해 그 동안 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 쌓아온 업적에 흠이 생기기 않도록 시대적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법 개정과 서로 간의 원만한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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